안산 미술관2

안산 미술관2 소개

안녕하세요.
안산호빠입니다.

오늘은 안산호빠와 함께 최북 모란죽도, 이정 관폭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산 미술관2

최북 모란죽도

등록일 2021-11-09

최북崔北[1712-1786년경], 조선朝鮮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7.5×32.0cm, 안산시(김홍도 미술관)소장

조선후기에 개성적 회화세계를 형성했던 호생관(毫生館) 최북이 모란과 대나무를 한 화면에 그려낸 작품이다.
화면 가득 채운 활짝 핀 모란과 아직 피지 않은 모란, 그리고 대나무 한 가지를 곁들였다. 대나무는 사군자의 하나로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데 비해, 모란은 부귀화(富貴花)로 꽃 중의 왕으로 불린다.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소재를 한 화면에 담은 것은 흔치 않은 구성이다.
그러나 모란, 대나무를 모두 수묵으로만 그려내어 문인풍의 ‘사의화훼화士意花卉畵’로서 잘 어울린다. 전체적으로 몰골(沒骨)
법을 사용하여 모란의 기품 있는 모습을 잘 그려냈다. 왼쪽의 잎이 활짝 핀 모란은 오롯이 농묵과 담묵의 대비만으로 모란의
고유의 풍성한 잎을 표현하였다.

이정 관폭도

이정李楨[1578-1607](그림), 강세황姜世晃[1713-1791]·유경종柳慶種[1714-1784](발문)
조선朝鮮 18세기, 그림: 27.0×31.5cm, 종이에 수묵담채, 발문: 32.0×32.0cm, 종이에 묵서
안산시(김홍도 미술관)소장

조선 중기의 화가 나옹 이정의 <관폭도>에 해암 유경종이 발문을 짓고 표암 강세황이 글씨를 쓴 것이다.
나옹 이정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 친했던 화가로 30세에 요절하였다. 허균은 이정이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죽은 것을 애도하는 글을 남겼다. 이정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중국 명나라에서 돌아온 소위 절파화풍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보이듯이 거친 필법과 과감한 수묵의 사용을 통해 흑백의 대조가 심하고 생략이 많은 화풍을
이루었다.
산속 기이한 바위 아래에서 한 고사가 서서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바위 위에는 소략하게 표현된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이런 소재와 구도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고사인물화에서 즐겨 사용된다. 이정의 그림은 전하는 작품이
많지 않으므로 이 <관폭도>는 그에 관한 좋은 연구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작품은 별지에 쓰여진 제발문이 있어 더욱 좋은 자료가 된다. 제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 발문 중 삼세에 그림을 잘 그렸다는 것은 이정의 할아버지 이상좌, 아버지 이승효가 모두 뛰어난 화가였으므로, 3대에
걸쳐 그림을 잘 그렸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정묘년 11월 밤에 덕조가 발문을 짓고 광지가 섰다는 기록이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된다.
덕조는 강세황의 처남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유경종(1714-1784)의 자이고, 광지는 강세황의 자이기 때문이다. 강세황과
유경종은 여러 기록에 함께 서화를 감상하였다고 하는데, 이 발문이 그 구체적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발문이 쓰여진
정묘년(1747년)은 어떤 해인가? 이 해는 바로 강세황이 <현정승집도>를 그린 해이다. 강세황은 이 해 복날 즈음에 유씨
대종가의 서재였던 유경종의 청문당에 모여 아회를 개최한 것을 <현정승집도>로 그려내었다.
<현정승집도>는 바로 안산에서 강세황과 유경종이 중심이 되어 여러 사람이 모여 아회를 연 회화적 기록인데, 같은 해 11월
또 다시 이정의 <관폭도>발문이 쓰여진 것이다. 이는 안산에서 서화를 통한 두 사람의 교유관계를 알 수 있게 하는 생생한
실물 증거가 된다.

등록일 2021-11-09

출처 안산시청

안산 미술관2 소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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