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문화유적탐방3

안산 문화유적탐방3 소개

안녕하세요.
안산호빠입니다.

오늘은 안산호빠와 함께 안산시의 문화유적 청문당, 오정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산 문화유적탐방3

청문당

청문당은 서울 근교에 남은, 조선시대 중기의 사대부 가옥으로 만권이나 되는 서적이 보관되어 있어 조선 후기의
학문과 예술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청문당은 안산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가옥으로 진주유씨네의 16대 손인 유시회(柳時會, 1562-1635)가 지었다고 한다.
유시회는 선조의 부마가 된 어린조카 적(1595-1619)과 함께 선조가 내린 사패지인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집은 ㄱ자의 안채와 ㄱ자의 사랑채가 마주보고 있으며, 현재는 후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일자형의 바깥채가
중앙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조선후기 시, 서, 화(詩,書, 畵)의 삼절(三絶)로 추앙을 받은 표암 강세황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 태생하고
성장한 곳으로 안채는 팔작지붕이고, 그위에 기와를 덮었으며 대청은 6간으로 중앙부 뒤쪽으로 반칸을 내어서 벽장을
달고 좌우 양쪽에 세 살문을 붙였다.

사랑채의 지붕도 팔작지붕이며 이곳에는 만권서적이 보관된 서고가 있었고 이들은 모두 귀중본이었으며 일만권의 서책이
저장된 조선4대 만권당중 하나였던 곳이다.
청문당은 서울 근교에 남은, 조선시대 중기의 사대부 가옥으로 주목할 만한 가차가 있으며 조선후기 안정복의 민족사학이
자라고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의 주심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오정각

조선 세조 2년(1456) 단종복위의 모의에 가담하였다 실패하여 사육신등으로 참형을 당한 충의공 김문기의 충절과
충의공의 자(子), 손(孫), 증손(曾孫), 현손(玄孫)의 효자정문이 각각 봉안되어 있다.

조선 세조2년(1456) 단종복위(端宗復位)의 모의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여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참형을 당한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의 충절(忠節)과 공(公)의 자 현석(玄錫)의 충신정문(忠臣旌問), 손 충주(忠柱), 증손
경남(景南), 현손 약전(約前)의 효자정문(孝子旌門)이 각각 봉안되어 있어 오정각(五旌閣)이라 불리고 있다.

김문기는 조선 세종8년(1426)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정언, 함길도(함경도의 옛이름) 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에
이른 문신이다.

고종7년(1870)에 건립한 정각으로 초익공(初翼工) 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건립되어 있다.

출처 안산시청

안산 문화유적탐방3 소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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