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의 성립과 행정구역 변화1

안산시의 성립과 행정구역 변화1 소개

안녕하세요.
안산호빠입니다.

오늘은 안산호빠와 함께 반월신공업도시의 조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산시의 성립과 행정구역 변화1

반월신공업도시의 조성

1914년시흥군과수원군에통합됨으로써이름까지사라진안산은1986년1월1일부로 독립하여 시로 승격되었다.
안산시의 독립은 1976년 10월‘반월신공업도시 건설계획안’이 발표되면서 그 서막이 올랐다.
당시는 박정희 정부가 1962년부터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3차계획이 종료되는 시점이었다.
이 계획은 기본적으로 불균형 성장론에 기초한, 공업을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하는 것이었다.
1차계획때에는 대외지향적인 개방체제의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되지 못했으나 2차계획 이후 공업화 전략을
꾸준히 추구하였고, 제3차계획(1972~1976)부터는 균형적인 지역개발이 강조되었다.
이에 이른바 서울-부천-인천사이에 형성된 이른바 경인공업단지라는 공업벨트가 남쪽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서울 남부지역에서의 공업화 과정이 지역적으로는 시흥군의 분할로 이어졌다.
반월신도시 계획이 수립되기 이전 1973년에 일찍이 안양읍을 시로 승격시켰고, 이어서 1976년부터는 화성군 반월면을
중심으로하고 시흥군 수암면∙군자면을 배후지역으로 하는 반월공업단지를 조성, 인구 약 30만 명을 수용하는 반월신공업도시
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행정적으로는 1976년 12월에〈반월도시개발지원사업소 조례〉가 공포되었고(경기도 조례 제757호), 1979년 8월에는 지원사업소가 경기도 반월지구 출장소로 승격되었다. (경기도조례제969호).
한편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1972년부터는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도 수립, 10년에 걸쳐 개발사업이 시행되었다.
거점개발방식에 의거하여 추진된 이 사업은 국토이용관리의 효율화, 개발기반의 확충, 국도포장, 자원과 자연의 보호∙보전,
국민생활환경의 개선 등을 기본 목표로 설정함로써 한국의 국토개발 기초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반월신공업도시는 제3차 경제개발계획과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라는 두 국가적프로젝트의
합작품이었다.

1970년대

1970년대는 1960년대에 시행되었던 제1, 2차 경제개발의 효과가 지리적으로 도발현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국가주도적 경제개발정책은 급속한도시의확 산과공업의 발달을 유도하였다.
이 개발정책의 지역적인 정점은 당연히 서울이 차지하였고, 인천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은 이른바 위성도시라는
개념과 함께 주요 공업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로써 이른바 수도권에는 업체와 인구가 몰려들게 되었고, 폐해가 조금씩
드러나자 1970년대부터 이미 수도권으로의 산업과 인구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시책이 강구되기도 하였다.

정책평가가 어떻든 이는 곧 경제개발과 국토개발이 토지와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했음을 방증하는것 이기도 하다.
이 억제시책의 주요내용으로는 수도권에 143.4㎢ 면적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설치하고, 대도시 내에 공장이나
교육시설 등과 같은 인구 증가를 유발하는 시설의 신설을 억제하는 것,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권장하고 위성도시를 건설하는 것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공해를 유발하는 산업을 수도권밖으로 이전시키는 것이 특히 중요했다.
이에 공장 이전에 대한 정책이 마련되기 시작하였고, 이를 수용할 공간으로 반월지역이 떠올랐다.
반월신공업도시는 이러한 배경에서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반월지원사업소는 1979년 8월 10일에 반월지구출장소로 승격하였다. 이때 수암면의 고잔리∙부곡리∙와리∙월피리∙양상리∙
성포리, 군자면의 원곡리∙선부리∙원시리∙신길리∙성곡리∙목내리∙초지리, 그리고 반월면의 일리∙
이리∙사리∙본오리∙팔곡2리 등이 관할구역으로 편입되었고, 각 면에는 수암∙군자∙반월지소가설치되어소속리를관할하였다.

출처 안산시청

안산시의 성립과 행정구역 변화1 소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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